이 세 지역은 단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게 아니다. 지중해와 비단길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만났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동로마(비잔티움)와 600년 가까이 다퉜고, 이슬람은 그 자리에 등장해 두 제국의 영토를 한꺼번에 흡수했다. 굽타 인도의 불교 미술은 비단길을 따라 동아시아로, 인도 숫자는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세 지역, 세 갈래 길
5~9세기 사이, 유라시아의 한복판인 인도·서아시아·지중해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 변동과 종교 형성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큰 그림부터 잡아본다.
굽타 왕조
왕정 · 힌두교 부흥사산조 → 이슬람
제국 → 종교 공동체비잔티움 제국
제정 · 동방 크리스트교굽타 인도 — 힌두교의 나라가 되다
두 종교, 한 시대힌두교의 부흥과 불교의 절정 · 4~6세기
마우리아 이후 분열되었던 인도를 다시 통일한 굽타 왕조는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를 펼쳤다. 산스크리트 문학(시인 칼리다사), 수학(0의 발견·10진법), 천문학이 모두 이 시기에 절정에 이르렀다.
주목할 점은 두 종교가 동시에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굽타 왕들은 자신은 비슈누·시바 같은 힌두 신을 숭배했지만, 불교 사원과 학자들도 보호했다. 그래서 굽타 시기에 불교 미술이 정점을 찍었고(아잔타 동굴), 동시에 힌두교가 점차 인도 사회의 주류가 되어갔다.
옆 동네 사산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비잔티움과 600년 가까이 전쟁했다. 그러나 두 제국 모두 7세기에 이슬람에게 영토를 잃거나(비잔티움) 멸망당했다(사산조).
이슬람 — 한 사람의 계시에서 세계 종교로
"신은 오직 하나이다"무함마드의 계시 · 610~
610년경,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명상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전한 가르침은 단순했다 — "신(알라)은 오직 하나이며, 모든 인간은 그 앞에서 평등하다."
처음에는 메카의 부유한 상인들이 무함마드를 박해했다. 그래서 그는 622년 메디나로 이주했는데(헤지라), 이 해가 이슬람력 원년이 되었다. 메디나에서 신앙 공동체(움마)를 세운 그는 다시 메카를 정복하고(630), 카아바 신전을 이슬람의 중심으로 삼았다.
무함마드 사후 정통 칼리프 시대(632~661)와 우마이야 왕조(661~750)를 거치며 이슬람은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100년 만에 스페인에서 인더스까지 영토가 펼쳐졌다 —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빠른 종교·정치적 팽창이었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
무슬림이 평생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의무. 신앙고백·예배·금식·자선·순례.
샤하다 (信)
"신은 알라 하나뿐, 무함마드는 그 사도다" 신앙고백.
살라트 (拜)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예배. 시간이 정해져 있다.
자카트 (施)
재산의 일정 부분(2.5%)을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
사움 (齋)
라마단 한 달 동안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단식.
하지 (巡)
일생에 한 번 메카로 순례. 신 앞에 모든 무슬림은 평등.
참으로 알라께서는 어떤 백성도 그들 스스로 변하기 전에는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코란 13장 11절 · 이슬람의 자율적 행위 윤리
비잔티움 — 천 년 동안 이어진 제국
로마의 동쪽 절반이 살아남았다395 동·서 분리 → 1453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395), 서로마는 476년에 무너졌지만 동로마는 1,000년을 더 살아남았다.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는 천 년 동안 유럽 최대의 도시였고, 이 제국이 우리가 부르는 비잔티움 제국이다.
가장 빛났던 시기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였다. 그는 옛 로마의 영토를 거의 회복했고, 로마법대전(『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해 후일 유럽법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537년에 세운 하기아 소피아는 직경 31m의 거대한 돔으로 1,000년 동안 세계 최대 교회였다.
종교적으로는 로마의 가톨릭과 점차 갈라져 그리스 정교를 형성했다(1054 동서 교회 분열). 화려한 모자이크와 이콘이 정교회 예배의 핵심이 되었고, 슬라브족(러시아·세르비아·불가리아)으로 정교가 전파되었다.
모자이크 속 두 인물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 ·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 · 547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에는 두 개의 유명한 모자이크가 마주 보고 있다 — 한쪽 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신하·성직자·군인들과 함께, 반대편 벽에는 테오도라 황후가 시녀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 — 테오도라는 곡예사의 딸이자 한때 거리의 무용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사회의 신분을 뛰어넘어 황후가 되었고, 532년 니카 반란 때 도망치려는 유스티니아누스를 만류하며 "황후의 자색 옷은 가장 멋진 수의(壽衣)다(왕좌에서 죽는 게 도망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한다.
두 모자이크가 마주 보고 있는 이 구성은 황제와 황후의 동등한 권위를 보여주는 동시에, 비잔티움 제국이 곧 신의 대리인의 나라임을 시각화한 정치적 선언이기도 했다.
탐구 활동 — 세 지역의 키워드를 맞춰라
아래 9장의 단서 카드를 알맞은 지역에 분류해 봅시다.
한눈에 정리
오늘 배운 것
- 굽타 인도(320~550) —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 산스크리트 문학·0의 발견·아잔타 동굴. 힌두교가 주류가 되어감.
- 사산조 페르시아(224~651) — 비잔티움과 600년 가까이 대립. 조로아스터교 국교화. 7세기에 이슬람에게 멸망.
- 이슬람(610~) —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시작. 622년 헤지라(이슬람력 원년). 100년 만에 스페인~인더스까지 확장. 5기둥의 행동 규범.
- 비잔티움 제국(395~1453) — 동로마가 1,000년을 살아남음.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대전·하기아 소피아. 정교회 형성.
- 세 지역은 비단길·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교류했다 — 인도 숫자가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간 일이 대표 사례.